2010년 06월 16일
오전 3시 25분
_낮에 잠을 좀 많이 자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느새 3시가 넘었다. 3시부터 북한과 브라질의 월드컵 조별예선경기가 진행중이지만 밤을 새워가며 축구를 볼 정도의 팬도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 시간이 되었다.
_스마트폰이란 놈이 생기고는 거의 트위터의 노예인양 많이 매달려 지내게 되었는데,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이 갈수록 그림으로 천착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고, 많이 보고 싶고, 많이 알고 싶고 그 사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형편이다보니, 자꾸 이걸로 "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그림을 두고 "일" 을 생각할 만한 정도인가도 의심스럽다.
_다시 또 염치불구하고 그 동안 발걸음하지 않던 지인들의 온라인 공간을 기웃거린다. 이리저리 엿보다보면 문득 문득 울컥하는 때가 있다. 스스로는 그렇게 그림으로 기어들어가고자 하는데도, 울컥하는 것들은 항상 글이다. 그림은 어차피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글은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이런 엿보기 뒤에는 항상 이 쪼그라진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과 가련함과 답답함이 남는다. 한 가지만 하면서 살고자 하는 소박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우둔한 것인지, 오만한 것인지 모를 마음가짐이 이렇게 발목에서 덜그렁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쥐고 가슴을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문드문 듣다보면, 거기에 대고 횡설수설 위로인지 격려인지랍시고 몇 마디 짜내다보면, 이렇게 오밤중에 먹먹하게 비틀비틀 이 곳을 찾아와 몇 줄이라도 적고 싶다는 울컥함만 남는다.
_그림과 글 사이, 그리고 생활 앞에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나는, 그래도 아이폰이 될 수 있을까. 두개의 눈과 하나의 머리과 열개의 손가락으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초라함이 다시 고개를 든다. 내 욕망의 초라함, 손발의 초라함, 불만의 초라함, 초조함의 초라함, 머뭇거림의 초라함.
_문학사적 의의 어쩌고 하며 글쓴이를 격려하겠답시고 앙리 마티스까지 동원해 거창한 소리를 한바탕 늘어놓고서 그런 소리를 왜 스스로에게는 하지 않는가, 혹은 왜 그런 소리를 스스로는 듣지 않는가 조용히 묻는 밤의 침묵에 주섬주섬 가림막을 펴 보았다.
_스마트폰이란 놈이 생기고는 거의 트위터의 노예인양 많이 매달려 지내게 되었는데,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이 갈수록 그림으로 천착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고, 많이 보고 싶고, 많이 알고 싶고 그 사이에서 소통하고 공감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형편이다보니, 자꾸 이걸로 "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그림을 두고 "일" 을 생각할 만한 정도인가도 의심스럽다.
_다시 또 염치불구하고 그 동안 발걸음하지 않던 지인들의 온라인 공간을 기웃거린다. 이리저리 엿보다보면 문득 문득 울컥하는 때가 있다. 스스로는 그렇게 그림으로 기어들어가고자 하는데도, 울컥하는 것들은 항상 글이다. 그림은 어차피 내가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글은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이런 엿보기 뒤에는 항상 이 쪼그라진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과 가련함과 답답함이 남는다. 한 가지만 하면서 살고자 하는 소박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우둔한 것인지, 오만한 것인지 모를 마음가짐이 이렇게 발목에서 덜그렁거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쥐고 가슴을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문드문 듣다보면, 거기에 대고 횡설수설 위로인지 격려인지랍시고 몇 마디 짜내다보면, 이렇게 오밤중에 먹먹하게 비틀비틀 이 곳을 찾아와 몇 줄이라도 적고 싶다는 울컥함만 남는다.
_그림과 글 사이, 그리고 생활 앞에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나는, 그래도 아이폰이 될 수 있을까. 두개의 눈과 하나의 머리과 열개의 손가락으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초라함이 다시 고개를 든다. 내 욕망의 초라함, 손발의 초라함, 불만의 초라함, 초조함의 초라함, 머뭇거림의 초라함.
_문학사적 의의 어쩌고 하며 글쓴이를 격려하겠답시고 앙리 마티스까지 동원해 거창한 소리를 한바탕 늘어놓고서 그런 소리를 왜 스스로에게는 하지 않는가, 혹은 왜 그런 소리를 스스로는 듣지 않는가 조용히 묻는 밤의 침묵에 주섬주섬 가림막을 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