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9일
雜想
_비정상적인 정서의 흐름. 생리처럼 찾아오는 주기적 변화인지, 생리에 딸려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인지. 배가 터지도록 먹고 걸어서 동대문에 갈까 하다 그냥 앉아서 끄적이고 쉬고 화장실도 가고 소화도 시킬까 하고 카페를 찾아본다는 것이 결국은 별다방이다.
_종로 3가 초입 파스쿠치 옆 스타벅스는 손님이 없다. 지하 매장은 휑하게 느껴질 정도. 그래서인지 유난히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럴 듯 해 보이기도 하고, 번잡해 보이기도 하고. 녹두색, 미색, 겨자색, 계피색 벽에 네모와 네모가 이어지며 그림자를 만든다. 알록달록한 색채, 일견 감각적인 듯 잘리고 이어지는 드로잉, 한창 유행하는 이른바 '스타일리쉬'한 구성, 이런 것들이 눈을 지나친다. 그림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고, 빈 벽과 네모난 틀, 그 밑에 홀로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의 화면을 이루어 눈에 남는다. 별로 진하지 않다고 하여 주문한 '오늘의 커피' VERONA는 내 입에는 역시 쓰다. 그냥 2500원의 자릿세를 낸 셈 치자.
_지난 토요일에 선물받은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 음반이 아주 마음에 들어 듣고 또 들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미샤 마이스키는 사실 잘 모르는 연주가였지만, 바흐라서, 무반주 첼로 연주곡이라서, 집어들었다. 우연히도 같이 산 신경숙씨의 <외딴 방>에 모음곡 중 2번이 나온다. 작가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2번을 듣는다. 내가 가진 첼로 음반은 장한나의 베스트 앨범 한 장, 그리고 이번에 생긴 미샤 마이스키 한 장이 전부이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이름이 익숙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는 장한나의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그 유명한 요요마의 앨범 역시 한 장도 없는 마당이지만 언젠가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도 찾아 들어보고 싶다. 글에 인용된 말들이, 소설이 마음에 와 닿았으므로.
_작년인가, 오래전에 쳤던 바흐 인벤션을 더듬더듬 쳐 보다 갑자기 화성을 압도하는 선율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형편없는 피아노 실력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서점에 가서 평균율 클라비어(제목이 정확한 지는 모르겠다)를 뽑아들고 뒤적거리다 '있는 인벤션이나 칠 줄 알게되면 도전하자' 하고는 집어넣고 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 인벤션을 몇 번 둥당거리다 연주에 대한 열정은 또 어느 새 사그라들었지만, 선율에 대한, 바흐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었나보다. 그 때는 막연한 선호였는데, 소설에 인용된 로스트로포비치의 말을 읽으면서, 무반주로 이어지는 첼로의 선율을 들으면서, 이 곡과 이것을 연주하고 녹음한 연주자에 대한 일종의 외경심이 조금 생겼다. 무반주로, 화성 없이 이어지는 선율은 그야말로 맨몸으로 달려드는 정면돌파다. 도와 주는 것도, 가려 주는 것도, 받쳐 주는 것도 없이 혼자 서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겨내야 하는 과정. 작곡도, 연주도, 녹음도 무엇 하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칭하면 너무 상투적이지만, 나는 그저 드러누워서 듣는 이 여섯 곡의 무게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닌 것 같다.
_신경숙 씨의 작품은 전에 한 편을 읽어보았지만 그것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 읽다 덮다를 반복했고 사실 끝까지 다 읽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외딴 방>은 방에 손님이 들어 있는데도 계속 손이 가서 두 권인데도 꽤나 빨리 읽었다. 결코 편안한 내용이 아님에도,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_별다방의 배경음악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이 반복된다. 전에는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악기 연주가 더 끌린다. 현악기의 소리가 감정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 전에는 그래서, 피아노가 더 담백해서 좋았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여전히 바이올린의 날카로움은 조금 덜 내키지만, 첼로는 참 좋다. 스스로가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변화의 동인은 모르겠다. 다만 변화의 결과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니 좀 곤란할 뿐.
_종로 3가 초입 파스쿠치 옆 스타벅스는 손님이 없다. 지하 매장은 휑하게 느껴질 정도. 그래서인지 유난히 벽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럴 듯 해 보이기도 하고, 번잡해 보이기도 하고. 녹두색, 미색, 겨자색, 계피색 벽에 네모와 네모가 이어지며 그림자를 만든다. 알록달록한 색채, 일견 감각적인 듯 잘리고 이어지는 드로잉, 한창 유행하는 이른바 '스타일리쉬'한 구성, 이런 것들이 눈을 지나친다. 그림에 대해서는 뭐라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고, 빈 벽과 네모난 틀, 그 밑에 홀로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의 화면을 이루어 눈에 남는다. 별로 진하지 않다고 하여 주문한 '오늘의 커피' VERONA는 내 입에는 역시 쓰다. 그냥 2500원의 자릿세를 낸 셈 치자.
_지난 토요일에 선물받은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 음반이 아주 마음에 들어 듣고 또 들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6곡. 미샤 마이스키는 사실 잘 모르는 연주가였지만, 바흐라서, 무반주 첼로 연주곡이라서, 집어들었다. 우연히도 같이 산 신경숙씨의 <외딴 방>에 모음곡 중 2번이 나온다. 작가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2번을 듣는다. 내가 가진 첼로 음반은 장한나의 베스트 앨범 한 장, 그리고 이번에 생긴 미샤 마이스키 한 장이 전부이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이름이 익숙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는 장한나의 스승이자 후견인이었다. 그 유명한 요요마의 앨범 역시 한 장도 없는 마당이지만 언젠가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도 찾아 들어보고 싶다. 글에 인용된 말들이, 소설이 마음에 와 닿았으므로.
_작년인가, 오래전에 쳤던 바흐 인벤션을 더듬더듬 쳐 보다 갑자기 화성을 압도하는 선율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형편없는 피아노 실력에도 불구하고 용감히 서점에 가서 평균율 클라비어(제목이 정확한 지는 모르겠다)를 뽑아들고 뒤적거리다 '있는 인벤션이나 칠 줄 알게되면 도전하자' 하고는 집어넣고 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 인벤션을 몇 번 둥당거리다 연주에 대한 열정은 또 어느 새 사그라들었지만, 선율에 대한, 바흐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었나보다. 그 때는 막연한 선호였는데, 소설에 인용된 로스트로포비치의 말을 읽으면서, 무반주로 이어지는 첼로의 선율을 들으면서, 이 곡과 이것을 연주하고 녹음한 연주자에 대한 일종의 외경심이 조금 생겼다. 무반주로, 화성 없이 이어지는 선율은 그야말로 맨몸으로 달려드는 정면돌파다. 도와 주는 것도, 가려 주는 것도, 받쳐 주는 것도 없이 혼자 서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이겨내야 하는 과정. 작곡도, 연주도, 녹음도 무엇 하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칭하면 너무 상투적이지만, 나는 그저 드러누워서 듣는 이 여섯 곡의 무게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닌 것 같다.
_신경숙 씨의 작품은 전에 한 편을 읽어보았지만 그것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 읽다 덮다를 반복했고 사실 끝까지 다 읽었는지 어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외딴 방>은 방에 손님이 들어 있는데도 계속 손이 가서 두 권인데도 꽤나 빨리 읽었다. 결코 편안한 내용이 아님에도,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_별다방의 배경음악은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이 반복된다. 전에는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악기 연주가 더 끌린다. 현악기의 소리가 감정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것 같다. 전에는 그래서, 피아노가 더 담백해서 좋았는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여전히 바이올린의 날카로움은 조금 덜 내키지만, 첼로는 참 좋다. 스스로가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변화의 동인은 모르겠다. 다만 변화의 결과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니 좀 곤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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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쩔꺼야. ㅋㅋㅋㅋ
소설 <외딴 방>은 내 방에 손님이 들어 있는데도 계속 읽게 되었다는 건데-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