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19일
무언가를 적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_커피를 많이 마셔서 일까, 밤도 이미 한밤을 넘어가고 있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여행 못 간다고 적기가 무섭게 '여행'갈 기회를 찾아내어 낼름 다녀왔지만 가서 보니 사실은 결코 '여행'이 될 수 없는 일정이었기에 여행에 대한 바람과 안타까움은 오히려 더 커져버렸다. 일주일간 아이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각종 규칙과 정해진 일정에 치이며 부대끼고 나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 혼자 보내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혹은 내키는 대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주말 내내 그것을 찾아 헤메고 다녔지만 오히려 더더욱 부대끼는 곳으로만 돌아다닌 꼴이 되어 피곤함만 더 커졌다.
_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천일을 채워서 사용하겠노라 하였던 핸드폰이 바다에 빠져 할 수 없이 바꿔야 했다. 모양새, 크기, 무게, 기능, 그 밖에 거의 모든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바꾸려니 참 아쉬웠다. 게다가 모든 것이 다 멀쩡한데 다만 네 개의 번호판이 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 것으로 바꾸려니 더 아쉽다. 다른 부분이 고장났으면 그냥 어떻게든 사용해 볼 텐데, 하필이면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번호판이 눌리지 않아 멀쩡한데도 들어갈 수 없는 메뉴가 많고 결정적으로 전화번호부를 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새 것을 장만해야 했다. 대리점, 통신사 서비스센터, LG전자 AS센터를 모두 찾아가 봤지만 "전화번호부"를 어디에서도 열 수 없었다. 어떤 관점으로는 불필요한/의미없는/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기회라고 할 것이고, 어떤 관점으로는 어떤 방식으로건 이어지고 있던 인간관계가 끊어져버리는 것이라고 할 일이다.
_AS센터의 직원이 기기를 분해해서 기판을 살펴보고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했을 때 기분이 참 복잡했다. 이제는 열 수 없는 핸드폰의 전화번호부가 이어주고 있던 수 많은 끈 중에 가늘고 약했던 것들은 이제 끊어져 버릴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잃어버리건 말건, 핸드폰이 있건 없건 튼튼하게 이어질 끈들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만나거나 연락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인연, 전화번호부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유일한 흔적이 되어버린 인연도 엄연한 나의 일부분이 아닌가. 내가 지나 온 모든 시간과 경험,인연이 다 합쳐져 나를 만들기에, 비록 그 이름과 전화번호가 더 이상 '연락처'로서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기억의 환기물' 정도의 위치만 갖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 역시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손톱보다도 작은 번호판 네 개가, 정확히는 그 네 개의 번호판에 연결된 몇 가닥의 가늘디 가는 회로가 망가진 것 때문에 이렇게 순식간에 끊어져 나가게 되었다. 몇 방울의 물과 약간의 소금기에 힘없이 부식되어.
_그래도 10개 혹은 11개 숫자의 조합들이 붙잡아주던 시간과 기억, 이른바 '인연'은 얼마간 이어질 것이다. 안타까움도 얼마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둘 다 점점 옅어질 것이고 결국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사람은 망각의 존재고, '유한'의 존재이니 별반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쓸쓸함을 쉽게 떨칠 수 없다. 존재 목적이 '연결'인 도구가 단절과 망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서인지, 한손 주먹보다도 작은 전자 기구에 의존하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할수 없는 나의, 지금의 인연이 문득 너무나 가볍게 느껴져서인지, 꽤 오랜 시간동안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많은 관계들이 바닷물 몇 방울에 힘없이 끊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아마도 사실일) 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_세 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고 무언가를 적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이렇게 앉아있는 것은, 어쩌면 몇 잔의 커피 때문이 아니라 편안히 마주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 '가벼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075. 핸드폰
_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천일을 채워서 사용하겠노라 하였던 핸드폰이 바다에 빠져 할 수 없이 바꿔야 했다. 모양새, 크기, 무게, 기능, 그 밖에 거의 모든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바꾸려니 참 아쉬웠다. 게다가 모든 것이 다 멀쩡한데 다만 네 개의 번호판이 눌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새 것으로 바꾸려니 더 아쉽다. 다른 부분이 고장났으면 그냥 어떻게든 사용해 볼 텐데, 하필이면 비밀번호에 해당하는 번호판이 눌리지 않아 멀쩡한데도 들어갈 수 없는 메뉴가 많고 결정적으로 전화번호부를 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새 것을 장만해야 했다. 대리점, 통신사 서비스센터, LG전자 AS센터를 모두 찾아가 봤지만 "전화번호부"를 어디에서도 열 수 없었다. 어떤 관점으로는 불필요한/의미없는/형식적인 인간관계가 정리되는 기회라고 할 것이고, 어떤 관점으로는 어떤 방식으로건 이어지고 있던 인간관계가 끊어져버리는 것이라고 할 일이다.
_AS센터의 직원이 기기를 분해해서 기판을 살펴보고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했을 때 기분이 참 복잡했다. 이제는 열 수 없는 핸드폰의 전화번호부가 이어주고 있던 수 많은 끈 중에 가늘고 약했던 것들은 이제 끊어져 버릴 것이다. 전화번호부를 잃어버리건 말건, 핸드폰이 있건 없건 튼튼하게 이어질 끈들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만나거나 연락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인연, 전화번호부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유일한 흔적이 되어버린 인연도 엄연한 나의 일부분이 아닌가. 내가 지나 온 모든 시간과 경험,인연이 다 합쳐져 나를 만들기에, 비록 그 이름과 전화번호가 더 이상 '연락처'로서의 기능을 갖지 못하고 '기억의 환기물' 정도의 위치만 갖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 역시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손톱보다도 작은 번호판 네 개가, 정확히는 그 네 개의 번호판에 연결된 몇 가닥의 가늘디 가는 회로가 망가진 것 때문에 이렇게 순식간에 끊어져 나가게 되었다. 몇 방울의 물과 약간의 소금기에 힘없이 부식되어.
_그래도 10개 혹은 11개 숫자의 조합들이 붙잡아주던 시간과 기억, 이른바 '인연'은 얼마간 이어질 것이다. 안타까움도 얼마간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둘 다 점점 옅어질 것이고 결국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깨끗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사람은 망각의 존재고, '유한'의 존재이니 별반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쓸쓸함을 쉽게 떨칠 수 없다. 존재 목적이 '연결'인 도구가 단절과 망각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서인지, 한손 주먹보다도 작은 전자 기구에 의존하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할수 없는 나의, 지금의 인연이 문득 너무나 가볍게 느껴져서인지, 꽤 오랜 시간동안 쌓아왔다고 생각했던 많은 관계들이 바닷물 몇 방울에 힘없이 끊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아마도 사실일) 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_세 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고 무언가를 적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이렇게 앉아있는 것은, 어쩌면 몇 잔의 커피 때문이 아니라 편안히 마주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 '가벼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075.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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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겠다, 허나 적어도 너의 번호는 바뀌지 않았으니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길 -
또 너도 알겠지만 이어질 인연은 다 이어지게 되어 있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느낌도 들지 않아?
나는 가끔 무의미하게 사람수만 늘어가는 전화번호부를 보면 괜히 깝깝스럽기도 한데,
막상 지우려고 하니 꼭 쓸일이 생길 것만 같고, 왠지 아쉬운 것도 같고 해서 지우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
아마 이제는 거의 피상적인 관계들에'만' 휩싸일 것 같아, 지금은 이렇게 헤매이다가 곧 있으면 또
이런데 적응하게 될거라고 생각하니 더 서러운 것 같기도 하고 -
한편으로는 이 팍팍한 세상에 그깟 기계 없이도 연결될 수 있는 인연이 있다는게 새삼 고맙기도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