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17일
4월, 꽃
_4월에는 두 종류의 꽃이 핀다. 목련과 라일락. 어느 순간 엇, 하고 인식된다는 점은 같지만, 이 둘이 자극하는 감각과 환기하는 이미지는 극단적이라 할 만큼 대조적이다.
_겨울을 뚫고 기어나오며 거북이 마냥 속으로 틀어박힌 고개를 뽑아 '이제 좀 살만하군'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김없이 목련 꽃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있고, 4월이 시작되고 있다. 목련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간결하면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빛깔과 형상은 시각을 자극한다. 목련꽃이 부풀어 오르다 터지듯이 만개할 때 나는 몸 안에 생명력이 돌아옴을 느낀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매년 목련이 피어나는 광경은 항상 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수사를 해 보고자 반질반질 다듬은 말이 아니다. 스스로도 봄마다 놀라는 것인데, 이상하게 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평소에 일상에서 기시감을 유난히 많이 느끼는 편인데도 목련이 피는 것은 그렇지 않으니 희한할 노릇이다. 목련은 우아하면서도 힘이 있고, 큼지막한 꽃송이가 늘 저 높은 곳에 나무 한 가득 피어나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한껏 물이 올라 벌어져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생명력의 상징이다. 목련의 색은 백색도, 자색도 모두 좋다. 순수하고 귀한 가운데 숨길 수 없는 여성성이 있고, 우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요염함이 있다. (실제로 목련은 대개 높은 곳에 피어 있어 실제 꽃의 향을 분명히 맡은 적은 없지만) 아마도 향 때문이 아닐까 하여 목련향이 첨가된 향수에 몇 번 도전해 봤지만 아직 나의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어 늘 아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목련은 이를테면, '여성' 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내가 닮고 싶은 대상인 것이다.
_목련이 져 갈 때쯤,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밤이면 문득 코에 와 닿는 향이 있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에 무리지어 피어나는 라일락이다. 라일락은 태양빛 아래서 볼 때는 '수수꽃다리' 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꽃이다. 작고 귀엽게 생긴 꽃송이의 생김새며, 연하고 어딘지 수줍은 듯한 보랏빛은 '라일락' 같은 이름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라일락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은 대개 밤, 길을 지나다 풍겨오는 향 때문이다. 낮에는 그 꽃이 어디에 피어있는지, '피어있기는 한 지'도 모르는 경우가 보통이다. 달빛이면 좋고 아쉬운대로 가로등 빛이라도 연하고 노르스름한 빛이 비칠 때 밀려오는 진한 향기는 발걸음을 세우고 고개를 잡는다. 구닥다리 묘사가 아니라, 실제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누가 좋은 향수라도 뿌리고 지나가나 고개를 돌리다 어둠 속에서 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라일락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 저게 어느 새 피어 있었나, 몇 번 킁킁거리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상스럽게도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라일락의 관능적인 향기와 그 뒤의 푸른 밤하늘은 아름답고, 유혹적이다. 그 안에는 목련의 물기 어린 생명력과는 다른, 욕망에 가까운 생명력이 있고, 그 끝은 죽음에 맞닿아 있다. 라일락 향은 뭉크의 마돈나 그림과 닮은 면이 있다. 그 안에 너무나도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어 그것을 키워내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원하는 것 같은, 역설적인 이미지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가던 발길을 잡아 맬 만큼 너무나도 매력적인 향이긴 하지만, 사실 한 번도 실제로 라일락 향이 나는 향수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은 없다. 이 향은 결코 소유하고 싶은 향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라일락 향수를 뿌리면 왠지 그 향이 내 생명력을 빨아들여 버릴 것 같은, 두려운 향이다. 그 치명적인 여성성이 오히려 살아있는 여성인 나를 압도하는 셈이다.
_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라일락 향을 맡고, 멈춰서고,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하다 문득 그런 내 모습이 흥미로워 적어보았다.
012. 꽃
_겨울을 뚫고 기어나오며 거북이 마냥 속으로 틀어박힌 고개를 뽑아 '이제 좀 살만하군'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김없이 목련 꽃봉오리가 한껏 부풀어 있고, 4월이 시작되고 있다. 목련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간결하면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빛깔과 형상은 시각을 자극한다. 목련꽃이 부풀어 오르다 터지듯이 만개할 때 나는 몸 안에 생명력이 돌아옴을 느낀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매년 목련이 피어나는 광경은 항상 처음 보는 것 같은, 신비하고 신선한 느낌을 준다. 수사를 해 보고자 반질반질 다듬은 말이 아니다. 스스로도 봄마다 놀라는 것인데, 이상하게 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평소에 일상에서 기시감을 유난히 많이 느끼는 편인데도 목련이 피는 것은 그렇지 않으니 희한할 노릇이다. 목련은 우아하면서도 힘이 있고, 큼지막한 꽃송이가 늘 저 높은 곳에 나무 한 가득 피어나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꽃잎 한 장 한 장이 한껏 물이 올라 벌어져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생명력의 상징이다. 목련의 색은 백색도, 자색도 모두 좋다. 순수하고 귀한 가운데 숨길 수 없는 여성성이 있고, 우아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요염함이 있다. (실제로 목련은 대개 높은 곳에 피어 있어 실제 꽃의 향을 분명히 맡은 적은 없지만) 아마도 향 때문이 아닐까 하여 목련향이 첨가된 향수에 몇 번 도전해 봤지만 아직 나의 내공으로는 어림도 없어 늘 아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목련은 이를테면, '여성' 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내가 닮고 싶은 대상인 것이다.
_목련이 져 갈 때쯤,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어느 밤이면 문득 코에 와 닿는 향이 있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에 무리지어 피어나는 라일락이다. 라일락은 태양빛 아래서 볼 때는 '수수꽃다리' 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꽃이다. 작고 귀엽게 생긴 꽃송이의 생김새며, 연하고 어딘지 수줍은 듯한 보랏빛은 '라일락' 같은 이름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라일락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은 대개 밤, 길을 지나다 풍겨오는 향 때문이다. 낮에는 그 꽃이 어디에 피어있는지, '피어있기는 한 지'도 모르는 경우가 보통이다. 달빛이면 좋고 아쉬운대로 가로등 빛이라도 연하고 노르스름한 빛이 비칠 때 밀려오는 진한 향기는 발걸음을 세우고 고개를 잡는다. 구닥다리 묘사가 아니라, 실제로 나는 걸음을 멈추고 누가 좋은 향수라도 뿌리고 지나가나 고개를 돌리다 어둠 속에서 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라일락을 발견하는 것이다. 아, 저게 어느 새 피어 있었나, 몇 번 킁킁거리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상스럽게도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라일락의 관능적인 향기와 그 뒤의 푸른 밤하늘은 아름답고, 유혹적이다. 그 안에는 목련의 물기 어린 생명력과는 다른, 욕망에 가까운 생명력이 있고, 그 끝은 죽음에 맞닿아 있다. 라일락 향은 뭉크의 마돈나 그림과 닮은 면이 있다. 그 안에 너무나도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어 그것을 키워내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원하는 것 같은, 역설적인 이미지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가던 발길을 잡아 맬 만큼 너무나도 매력적인 향이긴 하지만, 사실 한 번도 실제로 라일락 향이 나는 향수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은 없다. 이 향은 결코 소유하고 싶은 향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라일락 향수를 뿌리면 왠지 그 향이 내 생명력을 빨아들여 버릴 것 같은, 두려운 향이다. 그 치명적인 여성성이 오히려 살아있는 여성인 나를 압도하는 셈이다.
_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라일락 향을 맡고, 멈춰서고, 어김없이 죽음을 생각하다 문득 그런 내 모습이 흥미로워 적어보았다.
012.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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